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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자이언츠의 영원한 레전드 투수 최동원이 암으로 한국 야구계를 떠난지 벌써 1년이군요.

 

대전 삼성-한화전을 마치고 숙소에서 영화 '퍼펙트게임'을 봤습니다.

 

보면서 생각하니 벌써 최동원 사망 1주기가 다 됐더군요.

 

이 영화 도입부에 선동열이 기자가 묻는 질문에 '최동원 같은 그런 투수가 될겁니다.'라고 답하죠.

 

'一球一生 一球一死'

 

경남고등학교 야구부 감독이 최동원에게 해준 말이죠. 참 멋진 명대사였습니다.

 

영화 말미에 김용철이 참 재미난 얘기를 합니다.

 

아니 기억에 남는 명 대사죠.

 

'이 경기가 끝나면 딱 한사람만 기억할기다. 거기 내는 선동열이 아니라 최동원이어야 한다고.'

 

그리고 던진 멋진 대사 '내는 롯데의 4번 타자가 아니라 최동원이의 1루수로 뛸기다.'라고 말이죠.

 

너무 멋지지 않습니까?

 

근데 경기중에 모든 선수들이 락카룸에 있네요...ㅎㅎ 영화는 영화죠...

 

최동원과 선동열의 세번째 경기는 1987년 5월 16일 이뤄졌습니다.
 
결과는?

 

무승부였습니다.

 

두 사람은 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처절하고도 치열했던 15회 완투 2-2 무승부를 기록했죠.
 
4시간 56분간의 대혈투.

 

선동열은 232개의 공을 던져 전무후무한 1경기 최다투구수를 기록했고 최동원도 209개의 공을 던지고 마운드를 내려왔습니다.
 
그러나 둘의 승부를 결정짓기에는 총 441개의 공으로도 부족했고 지금까지 깨지지 않는 기록입니다.

 

최동원의 사망 1주기 포스팅을 위해 자료를 찾아 보니 참 재미난 내용들이 많았습니다.

 

최동원이 처음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 때는 1975년 열린 전국우수고교 초청대회였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전국대회 우승,준우승 팀들을 초청해 동대문야구장에서 전국우수고교 초청대회를 따로 열었다고 하네요.
 
당시 경남고 2학년이던 최동원은 전국최강이던 경북고와의 경기에 선발로 나섰는데 노히트노런을 거둔거죠.
 
경북고 다음 경기인 선린상고와의 경기에서도 8회까지 노히트노런을 했고 중앙고를 3-2로 꺾고 우승트로피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81년 대학을 졸업하고 아마 롯데에 입단했는데 계약금 연봉 등을 합쳐 1억원 상당의 최고대우였다고 하네요.

 

그해 8월 캐나다에서 열린 대륙간컵에 출전해 최우수선수상을 받았고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4년간 연봉 61만달러에 계약을 했지만 병역앞에서 입단이 무산됐습니다.
 
1983년 고향팀 프로 롯데에 입단해 첫 시즌 9승16패, 4세이브.

 

별로 좋지 않았죠.

 

81년부터 어깨부상에 시달린 것이 이유였겠지만 자만심도 컸다고 하네요.

 

84년 선발, 중간, 마무리를 가리지 않고 수시로 등판해서 27승을 거뒀습니다.

 

당시 전기리그 1위를 차지해 일찌감치 시리즈행 티켓을 거머쥔 삼성은 후기리그에서 1위를 달리던 OB 대신 만만한 상대 롯데를 파트너로 삼기 위해 시즌 막판 져주기 게임을 벌이는 추태를 보였죠.

 

하지만 삼성이 간과한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무쇠팔 최동원이라는 존재죠.
 
한국시리즈에서 기적을 만들어 냅니다.

 

1차전 4-0 완봉승.

 

3차전 12-3 완투승.

 

5차전은 정현발에게 역전홈런을 맞고 2-3 완투패.

 

6차전은 선발 임호균의 손가락 무상으로 출전 6-1 승리.

 

하루 쉬고 7차전.

 

역시 3승(2,4,5차전)을 거둔 재일동포 출신 좌완 에이스 김일융과 최동원의 맞대결이었습니다.
 
결과는 6-4로 최동원은 한국시리즈에서 롯데의 4승을 모두 일구어내는 투혼을 발휘며 우승.

 

그럼 선동열과의 대결은 어땠을까요?

 

그 첫대결은 1986년 4월 19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입니다.
 
최동원이 3회 해태 송일섭에게 솔로홈런을 허용했고 그걸로 끝났습니다.

 

참 싱겁죠.

 

1-0 선동열의 완봉승

 

2번째 대결은 같은 해 8월 19일 또 부산에서 이루어졌고 2-0 완봉승으로 첫 대결의 패배를 멋지게 설욕했죠.
 
그리고 영원한 무승부가 1987년 5월 16일에 펼쳐졌습니다.

 

허걱 그러고 보니 이날은 제가 군에 입대한 날이군요. ㅎㅎ

 

그래서 제 기억에 이 경기가 없는거군요.

 

앞에서 얘기했지만 4시간 56분간의 대혈투, 15회 완투, 2-2 무승부
 
결국 두 선수의 상대전적은 1승1무1패로 우열을 가리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1988년 선수회 설립을 추진하다 구단들의 방해로 무산되고 삼성 김시진과 보복성 맞트레이드를 당하죠.

 

89년 6월 삼성과 계약하고 후반기에만 나섰지만 성적은 1승2패.
 
그렇게 잊혀져 가던 최동원은 90년 결국 은퇴를 했습니다.
 
그는 8년 동안 통산 103승73패 26세이브 방어율 2.46의 빼어난 성적을 남겼습니다.

 

시대를 잘못 태어난 영웅은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롯데는 지난 11일 사직전에서 1주기 추모 행사를 했습니다.

 

아들 최기호군은 시구를 했고 동생 최수원 심판은 2루심을 봤습니다.

 

14일이 1주기이지만 롯데가 12일부터 3일간 광주 원정을 떠나기 때문에 사흘 앞당겨 추모 행사를 치렀죠.

 

롯데 구단은 '경기 일정상 추모식을 당길 수밖에 없었다'며 '대신 고인의 등번호였던 11번에 맞춰 11일에 실시하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회사 DB를 뒤져 최동원의 옛 모습들과 추모 경기 등의 사진을 모아 봤습니다.

 

무쇠팔 최동원을 추모하며 온라인 사진전을 열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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