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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구례 쌍산재라는 곳을 다녀왔습니다.
처음 본 인상은 뭐 그냥 오래된 집이네 였습니다.
그러나 사진을 찍으려고 발길을 옮기는 순간 저도 모르게 감탄사가 튀어 나왔습니다.
대문을 지나 마주한 첫 인상은 보통 보는 고택일 뿐이었지만 돌계단을 올라 대나무밭을 지나 밝은 빛이 스며드는 곳으로 나서는 순간 아!!!! 와!!!! 세상에 이런 곳이!!!!
25년의 기자생활 동안 한국에 이런 비경이 있었나 할 정도였습니다.
저는 글솜씨가 별로라 같이 취재를 간 동료기자의 기사를 베껴 왔습니다.
여기를 누르시면 정유미 기자의 기사를 직접 볼 수 있습니다.
잘 찍지는 못했지만 동영상도 같이 첨부하겠습니다.
고택에 내리는 아침 봄비와 바람과 새소리까지 정말 힐링이 되는 자연의 소리도 같이 담아 봤습니다.
ㆍ200년 된 고택, 쌍산재에서의 하룻밤
가정의 달 5월이다. 올해는 어린이날, 어버이날에 임시공휴일까지 생겨서 어딘가 떠나지 않고는 배길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길 한번 잘못 들면 차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기 십상이다. 이럴 때 지리산의 풀 내음과 맑은 새소리를 들으며 온 가족이 오래된 고택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것은 어떨까. 지리산은 지금 뭇 생명들이 뿜어내는 기운으로 온통 연둣빛이다. 섬진강 하늘에 걸린 구름이 바람결에 흔들리고, 너른 들판의 새싹들이 앞다퉈 고개를 내민다. 밤새 봄비 소리에 젖고 창호지 사이로 비추는 새벽빛에 눈을 뜨는 고택은 언제 가도 운치가 있다. 지리산 자락의 고택 쌍산재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지리산 고택에 머물다
지리산의 냄새를 맡기 위해 전남 구례군 마산면 사도리로 향한 날, 지리산은 어둑했다. 안개 자욱한 산을 따라 구름이 흩날리다가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가 싶더니 한바탕 비가 쏟아지고 오색 무지개가 걸린다. 이 종잡을 수 없는 날씨에서 지리산의 크기와 깊이를 실감한다.
쌍산재는 장수마을로 알려진 상사마을에 있다. 양반가옥이라고 하기엔 너무 소박하다. 좁고 작은 대문에 실망스러울 수도 있겠다.
안으로 들어서니 안채와 건너채가 올망졸망하다. 마당도 10평 정도나 될까 아담하다. 200년 넘게 쌍산재를 옛 모습 그대로 지키고 있다는 6대손 오모씨(51)가 감나무 아래 장독대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저희 집에서 햇볕이 가장 잘 들어오는 가장 좋은 자리에 장독대가 있습니다. 부엌 딸린 어머니들의 공간 안채에서 몇발자국 안되죠. 온 가족의 건강을 책임지는 밥상입니다.”
금방 날이 갠 탓인지 갖가지 꽃들이 장독대에서 한껏 자태를 뽐내고 있다. 앵두, 초롱, 오가피, 작약, 나리꽃들과 이름 모를 꽃들이 곱다.
한옥은 자연과 교감하는 집이다. 오랜 세월 달빛에 젖고 햇빛에 빛바랜 고택의 풀 한포기, 굴러다니는 돌멩이 하나도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청록이 우거진 대나무숲 오솔길을 따라 천천히 올랐다. 한 사람이 걷기에 딱 좋은 돌계단이 나왔다. ‘솨~솨~’하는 대나무 소리가 청량하다. 저 멀리 까치 한마리가 날아오르자 놀란 장끼가 덩달아 퍼드득 날아오른다.
잠시 쉬어가기 위해 대나무 숲길에 자리 잡은 호서정 마루에 앉았다. 새소리가 얼마나 큰지 가슴이 쿵쿵거릴 정도였다. 책을 읽다가 큰 대(大)자로 누워 하늘을 올려보다 깜박 잠이 들어도 좋겠다. 다시 계단을 오르면서 발아래 떨어져 있는 붉은 동백꽃을 주워 한참을 들여다봤다. 동백은 가장 예쁠 때 후두둑 진다. 절정의 미학을 가르치기라도 하려는 것일까. 목을 꺾은 동백꽃잎은 여전히 서럽도록 붉었다.
갑자기 하늘이 뚫렸다. 좁디좁은 오솔길 끝에 600~700평이나 되는 푸른 초원이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푸르고 드넓은 잔디밭에 봄 햇살이 양탄자처럼 깔려 있었다. 밤이 되면 이 풀밭에 달빛이 쏟아질 것이다. 쌍산재의 비밀정원은 그렇게 병풍처럼 두른 숲에 몸을 감추고 있었다. 나무 넝쿨을 헤치고 가니 어디선가 천자문이며 논어 왈 맹자 왈 글 읽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서당 사락정이다. “몸가짐을 바로 하고 부모에 효도하라.” 기둥에 걸린 주련이 또렷하다.
서당에는 대청마루보다 높은 누마루가 있다. 아무리 진득한 학동이라도 마냥 무릎 꿇고 책을 읽을 수는 없는 법. 졸리거나 발이 저릴 때 한번쯤 심호흡을 하고 어깨를 쭉 펴줘야 한다. 학동들은 아마도 이 누마루에 걸터앉아 다리를 흔들며 재잘거렸을 것이고 훈장님은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흐뭇해했을 것이다.
■지리산 자연에서 뛰놀다
“이 꽃이 뭐예요?”
서당을 나서는데 꼬마숙녀 연서(4)가 철쭉나무 앞에서 할아버지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전남 순천에서 3대가 경암당 독채를 빌려 하루를 쉰다고 했다. 할아버지 석세정씨(65)는 “아파트에서는 손주들에게 딱히 할 말이 없는데 여기 오니 나무와 꽃과 벌레 등 해줄 이야기가 많아 어깨가 으쓱해진다”고 말했다. 곁에 있던 송호진 할머니(61)가 “한옥은 집구조도 그렇고 모르는 것이 없어 좋다”고 거들었다.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은 집안에서 뛰어다닐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잔디밭에도 절대 들어가선 안되는 곳이라고 배운다. 연서가 잔디밭 앞에서 쭈뼛거리자 엄마 현주씨(36)가 말했다. “연서야, 잔디밭에 들어가도 돼, 들어가서 뛰어놀아도 된대.” 그래도 연서가 선뜻 나서질 못하자 엄마는 보란 듯이 잔디밭으로 뛰어든다. 엄마 뒤꽁무니를 따라 달려가는 연서의 웃음소리가 마당 가득 환하다. 온 가족이 잔디밭에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는 모습이 보기 좋다. 딸 현주씨는 “자연에 푹 빠져 부모님과 조용히 마음을 나누기 위해 고택을 택했는 데 정말 잘한 것 같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연서네 가족을 뒤로하고 천천히 걷는데 작은 쪽문이 보였다. 열어도 되나 고개를 빼꼼히 내미는데 ‘와~’ 탄성이 나왔다. 고요하면서도 푸른 저수지가 부채처럼 펼쳐져 있었다. 그림 같다. 가진 것이 있어도 자랑하지 않고, 지식이 있어도 뽐내지 않는 선비가 저만치 뒷짐을 지고 서 있는 듯하다. 선비는 날마다 이 조용한 호숫가를 산책하며 세상 이치를 깨달았으리라.
시골은 밤이 빨리 찾아온다. 달빛 그림자가 길어지면 새소리는 잦아들고 바람소리, 풀벌레 소리가 선명해진다. 지리산에도 금세 어둠이 내렸다. 방으로 들어서니 흙과 나무로 지은 집의 천장은 낮고 구들목은 따뜻하다. 창호지문 사이로 바람에 흔들리는 댓잎들이 쉴새 없이 속삭인다.
이른 새벽 눈을 떴지만 따듯한 방바닥이 좋아 한참을 뒹굴었다. 배를 깔고 누워 책을 읽다가 건너집 아기 울음소리에 벌떡 일어나 사랑채 너머 당몰샘으로 나갔다. 지리산에서 흘러내려 온 이 샘물은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다. 이곳 사람들은 상사마을이 전국 1위 장수마을이 된 데는 이 영험한 샘물 때문이라고 여긴다.
지리산 자락 고택에서의 하룻밤은 너무 짧았지만 그 잔잔한 기쁨과 여운은 꽤 오래 갈 성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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