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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신문에 나올 법 하지만 안나오는 사진, 그리고 가끔은 동영상을 볼 수 있는 곳
 
노가다찍사의  STAR SHOT 입니다. 
 
KBS 1TV 대하드라마 제작발표회가 지난 1일 오후 임페리얼 팰리스호텔 셀레나홀에서 열렸습니다.

이 드라마의 제박발표회에 생각보다 많은 기자들이 참석했더군요.

알고보니 김지수가 음주운전 사고 이후 공식석상에 처음으로 모습을 나타내기 때문이더군요.

음주사고 이후 그녀의 심정을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였으니 많은 기자들이 현장에 올 수 밖에 없었겠죠.

그러나 제작발표회 직전 김지수는 개인사정으로 참석치 않는다고 안내 방송이 나왔습니다.

그러자 취재기자들 무지 바빠지더군요.

취재기자들은 '그가 직접 사과하고 공인으로서 책임을 지는 모습을 기대했지만 김지수의 불참으로 무산되고 말았다.'는 내용의 기사를 생산했고 제작발표회가 시작도 되기전에 기사가 인터넷에 떴더군요.

그리고 근초고왕 역의 감우성과 함께 드라마 주인공을 맡은 만큼 이같은 행보는 상식을 벗어난 행동이라며 김지수의 불참에 대한 부정적 기사가 인터넷을 장식했더군요.

다시 제작발표회 얘기로 가 보겠습니다.

근초고왕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근초고왕에 대해 인터넷에서 알아봤습니다.


근초고왕(近肖古王)에 대하여
미상∼375년. 백제 제13대왕. 재위 346∼375년.
1. 왕권강화
비류왕의 아들. 일본《고사기 古事記》에는 ‘조고왕(照古王)’으로, 《일본서기 日本書紀》에는 ‘초고왕(肖古王)’으로 표기되어 있다.

즉위한 뒤 왕권의 강화와 확립에 주력하여 왕위계승에 있어서
초고왕계의 계승권을 확고히 하였다. 이는 왕과 아들 근구수왕(近仇須王)의 왕명이 초고왕·구수왕에 ‘근(近)’자를 가하여 이루어진 데서 알 수 있다.

또, 진씨가문(眞氏家門)에서 왕비를 맞아들여 왕실을 지지하는 배경세력으로 삼았다. 그리고 지방에 대한 통제를 보다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영역을 분정(分定)하여 지방통치조직을 만들고 지방관을 파견하였다. 이로써 왕은 중앙집권화를 보다 확고히 할 수 있었다.
2. 정복활동
한편, 근초고왕은 왕권확립을 바탕으로 하여 사방으로 정복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정복활동을 살펴보면, 남으로는 영산강유역을 중심으로 백제의 세력권에서 이탈해 있던 마한의 잔여세력을 경략, 복속시킴으로써 전라도지역 모두를 지배영역으로 확보하였다. 그리고 낙동강 서쪽에 위치한 가야세력에도 손을 뻗쳐 이들을 부용(附庸)하게 함으로써 영향권내에 넣었다. 이렇게 남방지역의 평정이 일단락된 후 북방으로의 진출을 도모하였다.

이러한 북진은 당시 남진정책을 추구하고 있던 고구려와의 대립을 불가피하게 하였다.

양국의 군사적 충돌은 369년 치양성(雉壤城: 황해도 배천)싸움에서부터 비롯되었으며, 그 절정은 371년에 벌어진 평양성(平壤城)싸움이었다. 이 싸움에서 태자와 더불어 정기(精騎) 3만을 거느리고 평양성을 공격하여 마침내 고구려
고국원왕을 전사시키고 대방고지(帶方故地)까지 차지하는 개가를 올렸다.

이리하여 백제는 사상최대의 영역을 차지하게 되었다.
3. 대외활동
근초고왕은 정복활동과 더불어 대외활동도 활발히 전개하였다.

우선 고구려에 대항하기 위해 신라와 동맹관계를 강화함으로써 한반도에서의 힘의 균형을 이룩하였으며, 중국동진(東晋)과도 외교관계를 수립하여 동진으로부터 영동장군영낙랑태수(領東將軍領樂浪太守)에 책봉되기도 하였다.

한편, 중국이 호족(胡族)의 침입으로 분열된 시기를 이용, 요서지방(遼西地方)으로 진출하여 백제군(百濟郡)을 설치하였다.

백제요서지역 진출은 요동지역으로 진출하여오는 고구려세력을 견제함과 동시에 상업적인 측면에서의 무역기지의 확보라는 의미도 있었다.

이와 더불어 일본열도방면으로도 활발히 진출하여 백제계통의 세력들과 긴밀한 관계를 가졌다. 백제와 일본열도의 세력과의 관계에 대한 물적 증거로는 일본의 이소노가미신궁(石上神宮)에 간직되어온 ‘칠지도(七支刀)’가 있다.

이 칠지도는 당대의 금석문자료로서 칼에 새겨진 명문(銘文)의 내용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분분하지만 그 내용의 핵심은 이 칠지도가
근초고왕 때에 만들어졌고 백제의 후왕(侯王)인 왜왕(倭王)에게 하사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또, 한편으로는 백제가 위치한 지정학적인 유리한 조건을 이용하여 고대상업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한대(漢代)이래 중국 황해연안에서 한반도의 서남해안으로, 다시 일본열도로 이어지는 해상교통로는 한족의 동방침입과 동시에 고대상업로로서도 중요한 길이었다. 그런데 낙랑군·대방군이 멸망되고 북중국에는 수로(水路)에 익숙하지 못한 호족이 들어서게 되자 이 전통적인 해상교통로와 상업로는 백제가 계승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백제요서지역에 설치한 무역기지와 한반도와 일본지역에 자리한 백제계 세력들을 연결하여 고대상업망을 형성함으로써 무역의 중심구실을 하게 되었다.
4. 문화의 진흥
또, 문화의 진흥과 일본으로의 전수면에서도 중요한 구실을 하였다.

대방지역을 점령하면서 중국계 사람들을 포섭하여 백제문화의 질을 높였고 나아가 일본열도에 새로운 문물을 전수하여주었다. 그 좋은 예로서는
왕인(王仁)아직기(阿直岐) 등을 일본에 보내어 《천자문》《논어》를 전해줌으로써 일본에 유학사상을 일으킨 것을 들 수 있다. 이처럼 지배영역의 확대와 통치조직의 정비를 통하여 왕권이 확립되고 문화가 발전하게 되자, 이와같은 신기운을 배경으로 박사(博士) 고흥(高興)으로 하여금 《서기 書記》라는 국사책을 편찬하게 하였다.

《서기》의 편찬은 왕실중심의 계보정리와 더불어 왕실전통의 유구성과 신성성을 과시하고 왕권의 위엄을 돋보이게 하려는 데서 취해진 조처였다고 할 수 있다.

이와같이 하여
근초고왕대는 백제의 최대 전성기를 이룰 수 있었다.

[참고문헌]

三國史記
晋書
宋書
日本書紀
韓國古代史의 硏究(李弘稙, 新丘文化社, 1971)
韓國古代史硏究(李丙燾, 博英社, 1976)
百濟王位繼承考(李基白, 歷史學報 11, 1959)
百濟의 遼西經略(金庠基, 白山學報 3, 1967)
百濟軍의 華北進出과 그 背景(方善柱, 白山學報 11, 1971)
百濟社會와 그 文化(金哲埈, 武寧王陵發掘調查報告書, 1973)
復元加耶史 上·中·下(千寬宇, 文學과 知性, 1977·1978)
漢城時代百濟의 地方統治體制―檐魯體制를 중심으로―(魯重國, 邊太燮博士華甲紀念史學論叢, 1985)
이상이 한국학 중앙 연구원 자료입니다.

이날 제작발표회에는 여느 제작발표회와 약간 달랐습니다.

10명의 많은 출연진들이 나온것도 이래적이지만 출연진들 모두가 드라마에서 입었던 소품옷을 입고 나타난 것입니다.

출연진들의 복식은 물론 충분한 고증을 통해서 만들었을거라 생각합니다.

그럼 출연진들이 입고 나왔던 복식과 그들의 신분을 사진을 보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주인공인 근초고왕 부여구입니다.

백제의 13대왕인 근초고왕은 감우성이 맡았습니다.

그가 입고 나온 복식은 아마도 왕이 되기전 세상을 자유롭게 떠돌던때 입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사회자의 요구로 칼도 뽑아보고  하지만 굉장히 어색한 모양입니다.



다음은 부여구의 아버지이자 백제 11대와인 비류왕 구태입니다.
비류왕은 중견배우 윤승원이 맡았고 멋진 포즈로 좌중을 압도합니다.


비루왕의 제1왕후인 해비 해소술역에는 최명길이 맡았습니다.



고구려 제16대 태왕인 고국원왕 사유역은 이종원이 맡았습니다.
미천왕의 장자인 사유는 환서대제국을 건설하고 싶었던 근초고왕과 같은 꿈을 꾸며 평생 경쟁을 펼치는 사이가 되는 역입니다.


사회자 말대로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참 멋진 배우입니다.


다음은 백제 최고의 왕공귀족이자 비류왕의 충신인 진승입니다.
안재모가 역할을 맡은 진승에게 근초고왕은 주군이고 죽마고우며 집안으로는 고종사촌형이라고 하는군요.



진씨 가문과 대립하는 해씨 가문의 적장자인 해건입니다.
이지훈이 분한 해건은 여준의 양아들로 교활하다 싶을 만큼 이성적인 성격으로 십년후를 내다보며 암계를 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인물입니다.



이번엔 위비랑의 여동생이며 근초고왕의 제2왕후인 위홍란입니다.
이세은이 맡은 위홍란은 부여의 왕족이었으나 부여가 멸망하고 요서로 도망쳐 근초고왕을 사랑하게 됩니다.




단범회의 수장이자 위홍란의 오빠인 위비랑역은 정웅인이 맡았습니다.



부여구의 호위무사인 강골미인 복구검은 추노의 몸짱 한정수가 맡았습니다.
여전히 강렬한 인상으로 멋진 무인의 모습을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또다른 부여구의 호위무사이며 이재에 밝은 파윤역은 강성진이 맡았습니다.
앞서 한정수의 멋진 폼을 의식한 듯 나오자 말자 여러가지 폼을 선사하며 사진기자들을 즐겁게 만들어 주는군요.(사진이 다양해지니까요...)
그래서 사진도 많이 올립니다.





신라의 삼국통일로 인해 묻혀버린 백제의 걸출한 군주 근초고왕.
이번 드라마로 인해 환서해제국을 건설해 동남아시아의 강력한 해상왕국으로 군림한 백제의 세련된 문화를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해 보일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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